줄거리
순수함은 과연 미덕일까?
이탈리아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가 연출한 2018년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한 청년의 순수함을 통해 사회 구조와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에서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농민 공동체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부유한 귀족 마라퀴즈의 지배 아래 착취당하지만,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라짜로는 이 마을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청년입니다.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묵묵히 일을 도맡으며 자신을 희생합니다. 영화는 이 라짜로의 '절대적인 순수함'을 중심축으로 삼고, 그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잔잔한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시간의 비틀릭, 현실과 환상의 경계
<행복한 라짜로>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중반부에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맞이합니다. 마르퀴즈의 사기가 발각되며 인비올라타 공동체는 해체되고, 라짜로는 사고로 절벽 아래로 떨어진 후 한참 뒤에야 깨어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라짜로는 전혀 나이가 들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 초현실적인 설정은 영화의 서사를 일종의 신화로 전환시키며 관객에게 라짜로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그는 과연 실재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인간성의 상징인가?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라짜로를 하나의 도덕적 상징으로 만들어갑니다.
도시에 던져진 순수함의 운명
라짜로는 깨어난 뒤 과거 인비올라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 도시로 향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삶은 훨씬 더 냉혹하고, 이전보다 더 강한 사회적 계층과 냉대가 존재합니다. 그는 여전히 순수하게 사람들을 돕고, 거절을 모르고, 신뢰를 보이지만, 그 순수함은 도시 사회에서는 결코 미덕이 아닌 무능력으로 간주됩니다. 결국 라짜로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채 무력하게 세상 속에 섞여버립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은행에서 '진실'을 말하려다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 장면은 순수함이 도리어 폭력을 유발하는 역설적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신화적 존재, 라짜로의 상징성
라짜로는 단순한 주인공을 넘어, 기독교적 맥락에서 부활한 인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은 성경 속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영화는 라짜로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악의 존재, 사회의 부조리를 통찰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는 인간 사회가 너무나 복잡하고 계산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존재입ㄴ디ㅏ. 세상은 순수함을 포용하지 못하며, 오히려 제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라짜로의 여정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결론, 인간다움에 대한 시적 질문
<행복한 라짜로>는 관객에게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서정적인 영상미, 잔잔하지만 강렬한 메시지, 그리고 판타지적 요소와 현실의 절묘한 결합은 이 영화를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철학적 우화로 만듭니다. 라짜로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본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그를 거부하지만, 그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이나 비판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줍니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영화이며, 긴 여운을 남기는 걸작입니다.